
김상진
| 조선일보 애틀랜타 주필 |
요즘 러시아의 푸틴(70) 대통령의 행각(行脚)을 보면 마치 마지막 망령 같다. 그 만큼 그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시대착오(時代錯誤)적이다.
발상(發想) 자체가 케케묵은 구시대 방식일 뿐 아니라, 그 들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르고 있는 비인도적인 만행(蠻行)을 보면 중세기보다 더 낡은 야만적 폭행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푸틴은 1999년도에 러시아의 영도자가 된 당시(47세)만 하더라도 개명(開明)적인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는 지난 2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 과거 중세기(中世紀) 미개 시절의 흉악한 족장(族長)처럼 변하고 말았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그는 대통령 재직 중 두 차례에 걸쳐 갑상선암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영국의 더타임스와 인디펜던트 지는 지난 2일 “푸틴 대통령은 2016년과 2019년 사이 관저에 갈 때마다 의료진이 대거 따라 다녔다. 특히 갑상선암 전문의(醫) 예브게니 실바노프가 166일간 35 차례, 이비인후과 전문의 알렉세이 셰글로프는 282일간 59 차례 동행했다”는 것이다. 이비인후과 진료중에 갑상선암이 발견됐고,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푸틴 대통령은 계속 건강 이상설에 시달려 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 과정에서 변덕스러운 행태를 보이고, 정부 고위 관료를 대상으로 분노(憤怒)를 드러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암 치료 목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할 때 나타나는 ‘로이드 분노’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국장을 지낸 배리 파벨 애틀랜틱카운설 수석 부회장은 “러시아 정보기관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나머지 신뢰도(度) 높은 정보를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 달 이상 지난 지금, 전쟁에 관한 크렘린궁의 사전 판단은 모두 빗나간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도 푸틴 자신이 1인 독재 체제를 지켜나가는 사이에 스스로가 변해 버린 것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바로 옆 마당인 우크라이나에서 민주화와 경제적인 번영이 개화(開花)할 경우 러시아에 미치는 영향을 푸틴은 가장 두려워했다”는 지적도 있다.
푸틴의 정치적 입지 뿐 아니라 측근들에게도 그 동안 축적해 온 부(富)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부의 축적은 놀랍게도 푸틴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푸틴의 개인재산이 약 240조원이나 되는데 이는 현재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오너의 재산(1154억 달러: 약 137조원)보다 근 두 배나 많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아무런 사업체를 가진 것도 아닌 푸틴 대통령이 20년간 1인 독재를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사람보다 두 배 가까이나 많은 돈을 갖게 되었다니 역사에도 찾아보기 힘 들 엄청난 부정축재를 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더욱 결정적인 사유(事由)가 한 가지 더 있다.
그 것은 푸틴이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우크라이나 소유였던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러시아 것으로 뺏어 낸 전력(前歷)에서 얻은 자만심(自慢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성공 사례 때문에 그 이 후로는 푸틴 대통령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유주의 국가들을 경멸(輕蔑)하고 크게 얕잡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우크라이나 남부에 붙어 있는 크림 반도는 옛날부터 소련의 직속 관할지였다. 인구분포도 러시아계가 58%로 다수를 차지했고, 우크라계 24%, 타타르계 12% 순이었다. 1954년 흐루시초프는 이를 우크라이나로 넘겨주었다. 이때는 아직 소련이 건재할 때였기 때문에 이 관할 변경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다만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 항은 소련의 유명한 ‘흑해함대’의 기지(基地)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원과 관리를 우크라이나 주에 맡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2014년 2월 친 러시아계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야당의 시위에 못 견디어 러시아로 도주(逃走)했다. 그러자 반대로 러시아계가 다수인 크림 반도에서는 2월26일 친 러시아 세력이 크림 지역 정부 청사와 의사당을 점거하고 크림 자치공화국을 선언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즉시 러시아 군 15만 명을 크림 반도에 지원세력으로 투입했다.
이 때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때처럼 러시아를 비난하고 오바마 미 대통령은 푸틴 러 대통령과 90분간 전화통화를 하고 설득을 시도했다. 그러나 크림 자치 공화국 측은 3월16일 주민 투표를 실시, 96.6%의 찬성표를 얻었다면서 3월 18일 푸틴 대통령과 합병 합의 서명을 단행하고 말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은 러시아의 강압적인 크림 반도 합병을 계속 용인(容認)하지 않고, 유엔총회에서 100 나라의 찬성으로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이 불법임을 결의했으나 법적 구속력은 없는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워낙 트럼프는 러시아와 모종의 연계설까지 퍼진 상태이니, 더 이상 크림 반도 강제 병합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자 트럼프는 “푸틴의 천재적 한 수”라고 크게 치켜세우기 까지 해, 세상 사람들의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푸틴이 점점 더 기세를 올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인류는 오랜 세월의 시행착오(施行錯誤)를 통해 전쟁행위는 백해무익할 뿐 아니라 혹시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기라도 하면 지구 자체가 죽음의 유성(遊星)으로 사멸(死滅)하고 만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부녀자 들을 포함한 일반 시민 집단 학살 행위는 바로 인류 전체에 대한 파괴행위이다.
온 인류가 손잡고, 모두가 앞으로 영구히 축복 받는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마지막 남은 과거의 망령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지구에서 싹 쓸어 없애야만 하지 않겠는가?